[게임 고찰] MMORPG가 쇠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 (feat. 마비노기가 망한 이유)

2020. 7. 17. 23:37게임/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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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MMORPG(이하 MMO) 장르의 게임을 좋아한다. 나만의 캐릭터를 육성하며 현실과는 다른 가상세계를 탐험한다는 매력적인 요소는 사람들이 MMO를 쉽게 무시하고 지나가기 힘들게 만드는 마력을 뿜어낸다. 나는 그 마력에 깊게 끌린 사람 중 한 명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시중에 나온 MMO 중 나름 이름이 팔린 적 있는 대부분의 게임을 플레이해봤다.

아쉬운 점은 그 게임들을 골고루 깊게 즐겨볼 수는 없었다는 점인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시간이 부족하다'이다. 그리고 이것이 MMO 장르가 쇠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MMO가 매력적인 이유는 나의 분신을 통해 현실이 아닌 또 다른 세계를 누빌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또 다른 '세계'라는 점이 중요한데, 가상공간이라고 해도 그 가상공간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은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과 동일한 개체이기 때문에, 아무리 가상세계의 포맷이 현실과 다르더라고 해도 결국은 현실의 요소를 베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가상현실로 유입된 요소 중 가장 중요한 요소를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경쟁'일 것이다. 물론 솔로잉 위주의 콘솔 게임 등에서는 경쟁 요소가 비교적 약할 수도 있겠지만, 이 글에서 주제로 삼는 MMO에서 경쟁은 그 어떤 요소보다 중요한 핵심 요소다.

하지만 MMO라는 장르 자체가 자연스럽게 경쟁을 기반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해결할 수 없는 근원적인 문제를 품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장르의 근원적인 문제는 바로 '불합리함'이다.

현실은 평등하지 않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 환경 등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지 않은 삶을 살도록 만든다. 이에 사람들은 게임 세계로 도망치기도 하지만, 게임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한 자산은 크게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돈', '시간', '운', '피지컬'이 그것이다. 게임마다 어떤 것의 비중이 크고 작을 수는 있지만, 이 네 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빠진 게임은 보기 힘들다.

MMO는 당연히 경쟁을 위한 이 네 가지 요소를 전부 포함하고 있는데, 이 중 가장 비중이 큰 요소가 바로 '시간'이다.

다른 요소는 몰라도 시간만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24시간씩 주어지기 때문에, 얼핏 보면 시간을 기반으로 한 경쟁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A라는 플레이어가 B라는 플레이어에게 경쟁에서 밀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A가 B보다 게임에 쏟은 시간이 적어서이지, B가 특혜를 받아서 일어난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A 역시 그런 결과가 나타난 것에 승복하기 쉽다.

하지만 게임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문제가 발생한다. 게임이 오래될수록 게임을 오래 플레이한 캐릭터에게 누적된 시간은 점점 쌓일 것이고,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플레이어 간의 격차는 커진다.

그렇다. MMO는 '불합리함'이 쌓이는 구조로 게임이 만들어져있다.

이것이 어찌 불합리함이냐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현실에서 사람들은 누군가가 많은 재산을 상속받으면 보통 부모를 잘 만나서 그렇다며 이를 불합리하다고 말한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오히려 게임은 행동과 성과의 피드백이 훨씬 빠르기 때문에 현실과는 다르게 템포가 훨씬 빠르기에 자산(시간)이 누적되어 불합리함이 쌓이는 속도도 현실과는 비교할 수 없다.

게다가 현실과는 다르게 게임은 게임사 또는 운영자와 같은 관리자가 필요하다. 관리자 입장에서 보면 유저의 흥미를 유발하고, 불합리함을 조절하고,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등 MMO 장르는 운영 난도가 높다. 애초에 MMO는 장르적으로 오래 서비스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장르인 것이다.

그렇기에 MMO는 하락세일 수밖에 없는 장르이다. 새로운 컨텐츠와 새로운 시스템이 등장하면 반짝할 수 있겠지만, 컨텐츠가 소모되고 불합리함이 쌓일수록 플레이어 수는 줄어든다.

관리자는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는 필연적이고 해결 방법이 없는 문제로, 가장 유명하고 유저 지향적인 형태의 게임이라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도 이 하락세를 막지는 못하고 있다.

요즘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돈의 비중을 늘리고 시간의 비중을 줄이는 게임들이 점점 늘고 있기도 하지만, 이는 현실의 불공평함을 완전히 게임에 들여오는 형태이기 때문에 유저들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방법은 대개 게임사의 이익을 늘리는 것을 위주로 한 방법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불합리함의 누적'이라는 기존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점을 보인다.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MMO는 다른 문제를 하나 더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MMO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현실의 삶을 그만큼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MMO의 방대한 컨텐츠, 그 속의 사람들과의 교류 이런 것들은 현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MMO를 즐기는 플레이어는 현실의 삶을 사는 데 시간을 쏟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게임 속의 삶을 살기 위해서도 시간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시간이 없다'고. 맞는 말이다. 게임 속의 내가 강해진다고 하더라도 현실의 내가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게임 속의 내가 부자가 된다고 해도 현실의 내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요즘은 게임으로 부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에게 일반화할 수 있는 예시가 아니라고 생각함) 그렇기에 우리는 현실의 삶을 살아야 하고, 게임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가 흥한 이유 중 하나인데, 롤에서는 30분에서 1시간 정도 내에 MMO의 세계(성장, 파밍, 스킬, 상대와의 스펙 차이, 경쟁 대결, 파티 내 역할 협동 등)를 압축적으로 즐길 수 있다. 돈과 시간의 비중의 줄이는 대신 피지컬의 비중을 극단적으로 늘리는 방법을 통해 짧은 시간 내에 게임의 근본적인 재미를 모두 즐길 수 있는 롤과 같은 게임 장르가 현대 사회에서 유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 외에, 소위 '양산형 모바일 게임'이라 불리는 장르도 돈의 비중을 늘리는 방법을 통해서이기는 했지만(BM의 차이), 시간의 비중을 줄인다는 점에서는 롤과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소위 '코어 게이머'라는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게임에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과 시간이 없는 현실의 괴리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왜 마비노기가 몰락했을까'를 생각하다가 쓰게 되었다.

뭐, '마비노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키트라든가, 밸런스 문제라든가, 엔진이나 그래픽 같은 시스템 문제라든가...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마비노기는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점이다.

마비노기의 가장 큰 특징인 '무한 환생'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문제인 이유는 익히 설명했듯이, 불합리함이 끝없이 누적된다는 점에 있다.

이로 인해 마비노기는 진입장벽이 다른 게임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다못해 와우는 매 확팩마다 월드를 리셋하여 신규 유저와 기존 유저 간의 격차를 조정할 수 있지만 마비노기는 그럴 수가 없다.

한때는 마비노기도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마비노기는 유저 간 격차를 줄이려고 해도 기존 유저의 반발에 부딪혀 그것을 실현하지 못했다. 결국 마비노기는 점점 심해지는 스펙, 경제적 측면에서의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 없게 되었고, 신규 유저의 진입 장벽을 높게 쌓아올려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참고로 마비노기는 자신들의 기득권만을 중시하는 악성 유저들이 많기로 유명한데, 대표적으로 '마비노기2'가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유저들이 가장 많이 요청했던 사항이 바로 기존 캐릭터를 새로운 게임으로 이전시켜달라는 것이었다.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무한 환생이라는 시스템에 유저들이 익숙해진 바람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한다.)

앞에서 계속 살펴봤듯이 MMO는 현실적으로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가진 장르기는 하지만, 그 문제점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방치해 둔 결과 마비노기는 더 이상 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버렸다.

마비노기를 했던 적이 있고, 마비노기를 하고 싶지만, 마비노기를 하진 못하고 있는 게이머의 입장에서, 아니, MMO를 했던 적이 있고, MMO를 하고 싶지만, MMO를 하진 못하고 있는 게이머의 입장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게임 장르가 저물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 참 아쉬워 이 글을 써 본다.


참고

중년게이머 김실장 - MMORPG의 쇠락과 몰락은 예정된 것이었다?

중년게이머 김실장 - 우리가 사랑했던 와우에 대하여(와우는 왜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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