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19. 22:31ㆍ후기&리뷰&소개/영화
(스포일러 주의)
사실 백두산은 닥터 두리틀을 보기 전에 먼저 본 영화지만, 리뷰를 쓰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야 리뷰를 쓰게 됐는데요, 그 이유는 글쎄요... 영화를 예상한 것과 달리 꽤나 재미있게 본 탓에 뭐라고 써야 될지 몰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 한국식 재난 영화는 그 스토리가 정말 일관적입니다. 평범한 주인공이 커다란 재난 사태에 맞부딪혀 가족을 구하기 위해 온몸을 바치면서 노력하는 것이 기본 뼈대로, 그 와중에 발암 캐릭터가 등장해서 극중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주인공과 대립하던 캐릭터가 무슨 일을 계기로(대부분 주인공의 모습으로 보고 자신의 가족과 겹쳐 봄) 주인공을 돕고, 주인공을 따르던 캐릭터 중의 한 명이 어쩔 수 없이 희생하여 관객들의 눈물을 짜내고, 우연에 우연이 겹쳐 드디어 가족과 상봉하는 신파 장면을 찍고, 마지막에 헬기 같은 것들이 날아오거나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는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가 끝납니다.
그리고 이 영화 역시 대충 이 정도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봤습니다. 사전 지식이라고는 마동석 씨가 배우로 출연해서 폭발하는 백두산을 뚜까팬다는 드립을 읽은 정도밖에 없었죠. 예상대로 영화 스토리는 거의 예상을 비껴간 부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재미있더군요.
이미 말했다시피 스토리는 전부 예측 가능한 수준이었기에 할 말이 없네요. 재난 영화라는 장르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CG나 화질 수준만 좋아지고 언제나 옛날과 다를 것 없는 스토리 수준을 보다 보면 대체 언제가 돼서야 한국의 재난 영화 수준이 발전할지 한숨만 나옵니다.
개연성 문제도 꽤 많습니다. 폭파반과 전투반이 완전 따로 비행기를 타고 작전 지역으로 이동한다든가, 그 난리를 치면서 3일도 안 되는 시간 내에 한반도의 반을 주파가 가능한가 등의 의문점이 영화를 보면서 꼬리를 물면서 나타납니다.
특히, 수지 씨가 역할을 맡은 주인공의 아내는 임신한 상태에서 다리에서 해일?이 밀어닥쳤는데, 다음 장면에서 멀쩡히 미군 수송 버스에 탑승하더라고요. 저는 솔직히 해일이 닥치는 장면에서 '일반적인 클리셰와 다르게 주인공의 가족이 이미 죽었는데도 주인공이 그 사실을 모르고 가족을 위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희생한다는 참신한 스토리의 영화였나?'하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만삭의 몸으로 물에 빠지고도 멀쩡하네요. 뭐죠??
사실은 주인공 아내가 물에 빠지고 구출되는 장면이 있었다는데, 그것이 영화 상영분에서는 잘린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스토리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장면을 자른 건 단지 상영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인가요? 설마 영화가 흥하면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처럼 잘린 장면들도 포함하는 '백두산 오리지널'이 나오는 건가요??
이병헌 씨가 역할을 맡은 리준평이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아서 폭탄을 터트려 엘리베이터가 추락한 상황에도 (다리 부상을 입기는 하지만) 멀쩡히 살아있다는 점은 말도 안 되지만 영화를 전개하기 위한 작위적 요소라고 눈감아 준다고 해도, 주인공 아내가 해일에 휩쓸리고 살아남는 장면은 영화 전개상 필요 이유가 1도 없다 보니 더욱 비판할 수밖에 없네요.
신파에 대해 말하자면, 백두산에서는 한국 영화에서 자주 지적되는 고질적인 관객에게 '울어라'라고 강요하는 신파 문제는 생각보다 부각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 영화인 이상 신파 장면이 없을 수야 없지만, 이 정도면 딱히 영화 진행을 해치지 않고 적절히 사용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한테 '신파'라고 하면 '국제시장'이 너무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있는지라, 그 정도로 남발하는 것만 아니면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해운대'보다는 확실히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CG 수준도 준수했다고 봅니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실시간으로 뭔가가 폭발하고 엄청 거대한 스케일의 장면이 계속해서 스크린을 휩쓸거나 하지는 않지만, 한국 영화의 CG 수준도 꽤 수준급에 올랐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고 봅니다. 단,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재난 영화 수준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겁니다.
중간중간 터지는 개그로 영화의 긴장을 이완시켜준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얼마 전에 리뷰한 '닥터 두리틀'의 개그에 대해서는 정말 혹평을 한 것과는 달리, '백두산'의 개그에는 영화관이 조용하지 않고 아마 모든 관객들이 제대로 반응을 하더라고요. 어쩌면 한국과 외국의 정서 차이 때문에 그쪽 개그가 직접적으로 관객들에게 와닿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도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 드라마는 안 보고 미드만 보는 사람도 많고 외국 유튜브를 즐겨보는 문화도 정착된 지금 상황에서 외국 문화가 우리에게 그렇게까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 테니 문화 차이 때문에 개그를 받아들이는 온도 차가 심한 것은 아니겠죠. 하여튼 백수산의 개그는 취향에 딱 맞았습니다. 배우들 간의 케미가 좋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병헌 씨의 연기였습니다. 이병헌 씨의 연기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최근 제게 각인된 이병헌 씨의 연기는 '광해'와 '내부자들'인데, 그 영화들에서 맡은 캐릭터와 백두산에서 맡은 캐릭터가 영화 배경만 다를 뿐 거의 동일한 캐릭터로 보이더라고요.
한 마디로 연기 스펙트럼이 하나밖에 안 보였다는 말인데, 이건 정말 제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하고 이병헌 씨만큼 연기 스펙트럼이 다양한 배우는 드문 것도 사실이기에,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애초에 연기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하는 것은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종종 어떤 배우가 색다른 이미지의 캐릭터를 연기했을 때 이슈가 되는 것이니까요.
또한, 생각해 보면, 배우 중에서 이와 같은 문제를 겪지 않은 사람은 없다 싶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황정민'이라든가 '송강호', '최민식' 이런 유명한 배우들을 생각하면 어떤 캐릭터가 생각나나요? 그냥 그 배우들이 연기했던 역할 중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의 캐릭터만 생각나지 않나요? 배우가 아무리 색다른 연기 변신을 시도한다고 해도 결국 관객들에게는 그 배우만의 독특한 이미지 하나가 각인되는 것이 당연하겠죠.
주절주절했지만, 그냥 제가 좋아하는 배우의 좀 더 다양한 면모를 보고 싶어서 하는 말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적당히 넘어가 주세요.
하여튼 백두산은 머리 비우고 스트레스 푼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관람하면 괜찮은 영화입니다. 물론 태클이 걸릴만한 부분도 많지만, 이 정도면 관객이 그냥 배우의 연기에만 집중하고 장면장면에만 몰입하게 만들어 그런 부분은 적당히 넘어가게 할 수 있는 힘을 갖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평점 ●●●○○(3.0/5.0)
이미지 출처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7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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