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쇄살인 - 표창원

2019. 9. 23. 01:03후기&리뷰&소개/책

한국의 연쇄살인 - 희대의 살인마에 대한 범죄수사와 심리분석
국내도서
저자 : 표창원
출판 : 랜덤하우스 200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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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살인의 추억' 영화로도 유명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특정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뉴스를 보고 예전에 샀던 '한국의 연쇄살인'이라는 책이 생각나서 다시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한국의 연쇄살인'은 범죄심리학 전문가이자 현 국회의원인 표창원 씨의 대표적인 저서입니다. 2005년에 초판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인기 저서죠. 표창원 씨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그의 업적이나 그의 전문 분야에서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이 책에 대해서 태클을 걸 여지는 별로 없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의 연쇄살인'은 크게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연쇄살인이란 무엇인가?', '연쇄살인범은 누구인가?', '1970~2000년대의 연쇄살인'

'연쇄살인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제목처럼 연쇄살인에 대해서 정의하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연쇄살인의 정의가 비교적 명확해진 편이고 대중의 이에 대한 인식도 전보다 나아졌지만, 이 책이 쓰일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저자는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용어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연쇄살인범은 누구인가?'에서는 연쇄살인범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연쇄살인범의 발생 요인으로 '선천적 요인', '어린 시절의 학대 등 충격적 경험', '사회적 스트레스', '촉발요인', '자유 의지에 의한 선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연쇄살인은 개인적 특성보다는 범인이 어릴 적에 외부로부터 받은 요인들이 주요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도 개인의 행동은 대부분의 경우 외부 사회의 영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아직 정신이 성숙하지 않은 시점에 받은 충격적 경험이나 인격 형성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겪는 외부 상황이 성인이 된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많은 심리학 이론과 사례에서 증명되기도 했죠.

그렇다고 해서 연쇄살인범들이 살인을 저지른 것은 외부의 영향 때문이니, 그들을 용서하고 이해해줘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처음부터 연쇄살인범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표창원 씨도 연쇄살인의 결정적인 요인은 범인의 자유 의지에 있기 때문에 그들을 동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연쇄살인범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더 좋은 사회를 만들 필요는 있지만, 그들에게 동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은 또 다른 연쇄살인을 유도할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1970~2000년대의 연쇄살인'에서는 해결되었거나 해결되지 않은 굵직굵직한 연쇄살인 사건들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실제 있었던 불행한 사건들을 나열하고 있기에 최대한 중립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지만, 구체적인 사건들의 내용을 가독성 좋게 쓴 책의 구성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 흥미가 유발되기도 하는 파트입니다. 이 파트에서는 사건의 전개 외에도 개인의 미숙함과 당시 사회의 부적절한 시스템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연쇄살인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경우나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는 사건들이 여럿 있었지만, 경찰 개인의 미숙함이나 범인 체포 시스템 자체의 미비 등으로 인해서 살인을 조기에 방지하지 못한 예시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경찰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이 사건들에 대해서 진심을 가지고 대하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인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일반인들의 행동을 통한 나비효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살인이 일어난 이후에 범인을 잡는 것에 일반인들이 적극 협조해야 된다는 말뿐만이 아닙니다. 저자는 계속해서 연쇄살인범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아직 완벽하지 못할지라도, 학대하지 않는 부모, 말썽꾸러기를 보듬는 선생님, 이웃을 사랑하는 아저씨와 아줌마, 가슴이 따뜻한 보호관찰관, 사명감과 전문성으로 무장한 경찰관이 연쇄살인의 싹을 잘라버릴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이슈가 되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이 책에서는 그 자극적인 이름을 경계하여 '경기 남부 부녀자 연쇄살인 추정 사건'으로 칭하며 148~172p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2005년 11월에 공소시효가 만료됐기 때문에 이 책이 쓰일 당시(2005년 5월)에 저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공소시효가 만료되고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죠. 그리고 10년도 더 지나서 사건의 용의자가 특정됐습니다. 물론 아직 이 용의자가 범인이 맞는 건지 확실하지도 않고, 이 건 자체가 현재의 정치적 이슈를 덮으려는 물타기 사례가 아니냐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이 참혹하고 안타까운 사건이 과연 사건이 벌어지고 30여 년 만에 해결될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