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28. 00:32ㆍ후기&리뷰&소개/책
스포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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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훔쟈입니다. 오늘은 이시구로 마사카즈의 외천루에 대해 리뷰해 보겠습니다.
이시구로 마사카즈는 목요일의 플루토,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등을 대표작으로 하는 일본의 만화가입니다. 개인적으로 만화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반드시 5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선호하는 작가로, 이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최고라고 생각하는 작품이 바로 외천루입니다.
이시구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작가는 일상물 속에서의 미스터리스러운 이야기를 잘 풀어가는 데 특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요, 외천루야말로 이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외천루란 책은 처음 읽어보면 이게 뭔가 싶습니다. 외천루는 총 9챕터로 구성된 단편 만화인데, 챕터 초반부에는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전개됩니다. 실제로 있을법한 이야기들이고, 나름의 고민들도 담겨있기는 하지만, 그냥 말장난이나 콩트를 보여주는 한 편의 독립된 이야기들로 보입니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 이야기가 후반부로 접어들면 갑자기 분위기가 급반전됩니다. 사실 쓸모없어 보이던 이야기들은 큰 강줄기로 모여드는 작은 하천들이었던 겁니다. 사소한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모아서 전체적인 줄거리를 전개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독자가 큰 줄거리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하나로 모인 이야기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다음 갑자기 결말을 내어버리는 방식으로 독자가 쉽게 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미스터리한 책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작가는 외천루라는 특수한 장소를 배경으로 선택했습니다. 아마 외천루는 실제로 존재했던 구룡성채를 모티브로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외부에서는 알기 어려운 독립되고 복잡한 공간이라는 특수성을 통해서, 그 내부에 숨겨진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사실 이 책의 주제는 가볍지 않습니다. 단순히 여러 사건이 하나의 사건으로 모이고 그 사건의 전개를 독자가 추리하는 식의 미스터리 장르라고 생각하고 읽었다가는 큰코다칩니다. 지금에 와서는 흔한 클리셰이기는 합니다만, 이 책은 발달한 과학 기술로 인해 발생하는 윤리 문제를 중점으로 내용을 전개합니다.
만약 인간과 생명 공학을 통해 만들어진 인공 생명체 사이에서 태어난 무언가는 인간일까요, 아닐까요? 보통 인간이 생명을 복제하는 것은 해도 되는 일일까요? 인격을 가진 로봇은 인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인공 생명체가 사람과 흡사한 외모를 가져도 될까요?
작가는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러한 사건만을 계속 나열할 뿐이지요. 등장인물들 역시 이에 대한 해답에 닿지 못합니다. 그들 역시 생각하고 고민하다 죽어갈 뿐입니다.
네. 흔한 클리셰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비슷한 클리셰의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소비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이에 대해 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아직 현실에 닥치지 않았기 때문이죠. 아직 도달하지 못한 미래의 문제지만, 반드시 대면하게 될 문제에 대해 우리는 계속 고민할 뿐입니다. 그러다 나중에 실제로 문제를 대면하게 될 때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외천루는 이시구로 마사카즈라는 작가를 처음으로 알게 해준 작품입니다. 처음 우연히 읽었을 때는 그냥 괜찮은 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몇 년이 자나 천천히 곱씹어 보니 참 괜찮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책을 구매하려고 했는데, 품절이 되어서 구할 수 없게 되었네요. 게다가 중고로 파는 가격이 참...너무하더라고요. 딱히 재고가 있는 책방도 없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해외 사이트에서 영어로 번역된 버전으로 오랜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원판의 맛을 살리지는 못하더군요. 예전에 읽었을 때는 그나마 우리나라는 일본과 같은 한자문화권이라서 원작의 어감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는데, 영어판으로는 역시 그런 미묘한 느낌을 살리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아리오가 쓰러지면서 키리에를 부를 때의 중의적인 의미를 살리지 못한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좋은 작품이 생각나서 다시 한 번 읽었더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 정도면 명작은 아니더라도 나름 수작의 반열에는 올릴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되는 분은 꼭 한 번 읽어보세요. 아, 한 번만이 아니라 끝까지 읽고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더 읽어보세요. 더 재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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