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남산의 부장들 - 건조한 듯하지만 건조하지 않은 관점의 영화

2020. 9. 10. 23:26후기&리뷰&소개/영화

 

 

오늘 리뷰할 영화는 '남산의 부장들'입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지 이미 몇 개월이 지났지만, 리뷰를 미루다 보니 이제야 글을 쓰게 되었네요.

 

 

 

'남산의 부장들'은 '10.26 사건'이 있기까지의 40일간을 담은 팩션(Faction=Fact+Fiction) 영화로, '내부자들'과 '마약왕'을 만든 '우민호' 감독의 작품이며, '김규평' 역에 '이병헌', '박통' 역에 '이성민', '박용각' 역에 '곽도원', '곽상천' 역에 '이희준' 등의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제목인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중앙정보부장들을 남산의 부장들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따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명시하면서도, 재미있게도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명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재규'는 '김규평', '김형욱'은 '박용각', '차지철'은 '곽상천'으로 이름이 바뀐 식이죠.

아마 이전에 같은 주제를 다뤘던 영화 '그때 그 사람들'처럼 저작권 및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영화 시작과 끝부분에서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며, '박통'이 명백히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것이 영화에서 명시되며, 모든 관람객이 이 영화가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지 아는 이상 이런 조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인데, 우민호 감독은 이전에 '내부자들'을 만들고 '픽션인 영화가 오히려 현실을 따라오지 못한다'라고 생각해서인지, 그 이후로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만든 '마약왕'에서 별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절치부심해서 '남산의 부장들'을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영화를 만들었기에, 이 영화는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 거의 흠잡을 데가 없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역할을 맡은 이성민 씨를 처음 봤을 때는 이성민 씨가 박 대통령과 별로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 최고의 명대사 "임자 옆엔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

 

왜냐하면 제게는 이성민 배우가 드라마 '미생'에서 맡은 '오상식 차장'의 역할이 뇌리에 너무 깊게 박혀 있어서 배역의 이미지가 영화의 등장인물과 매칭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오히려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사람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데보라 심이 긴장을 풀기 위해 담배를 피우지만 초조함을 숨기지 못해 손을 덜덜 떠는 장면이라든가, 곽상천 역의 이희준 배우가 보여주는 차지철의 뒤뚱뒤뚱거리는 걸음걸이 같은 연기 요소가 이 영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스토리 흐름 면에서도 좋은데요, 팩션 영화는 기본적으로 실화를 기반으로 그 사이에 허구적 요소들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만들어지지만, 실화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사실을 너무 왜곡하는 요소들을 끼워 넣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일 자체가 얘깃거리도 많고 파격적인 소재이기 때문에 영화가 전체적으로 각색 없이 역사의 흐름만을 따라기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에 좋으며, 여기에 영화적 연출을 통해 관객에게 스릴 넘치는 경험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다만, 영화 자체는 호평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민감한 소재를 사용한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역사를 잘 모르는 낮은 연령대의 학생들처럼 관련 역사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잘못된 지식을 갖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화를 보면서 주의할 점은 현실과 픽션을 구분하는 것인데, 미성년자들은 아직 판단력이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잘못된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있죠. 아니, 어른들의 경우에도 어떤 것이 실제고 어떤 것이 허구인지 굳이 찾아볼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때 더욱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김재규를 미화하고 있는 영화이기에(개인적인 해석입니다)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화 내에서는 김재규가 '혁명'에 참여한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5.16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그가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고 권력을 얻기 위해 한 행동들을 보면 그가 최후 진술에서 말한 것처럼 국민을 생각한다는 대의를 위해 행동했다거나 박정희 대통령을 혁명의 배신자라는 이유로 죽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를 보는 관람객은 단순하게 영화에서 본 것이 사실이라고 믿기 쉽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무래도 영상 매체가 사람에게 미치는 파급력을 과소평가하는 주장인 것 같네요. 또한 인간이 생각보다 단순한 생물이라는 것은 사회과학적으로 계속해서 증명되고 있는 사실이니까요.

 

 

 

중간중간 '총'이라는 소재를 통해 폭력과 권력을 은유적으로 묘사하며, 권력의 메타포인 총을 통해 김규평이 박통을 살해하여 영화는 김규평 역시 권력욕에 빠져 박통을 살해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도 같습니다만, 그의 박통의 곁을 지키겠다는 대사 같은 것들을 보면, 김규평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 맞는 해석인지도 의문입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창작물을 만드는 것은 으레 있는 일이지만, 소재 자체가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단순히 이슈몰이를 해 흥행을 유도하기 위해서 이런 소재를 고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에 좋게 해석하기 더 힘든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실제 인물의 감정의 어땠을까 생각하는 정도는 괜찮아도, 역사적 사건을 왜곡하여 보여줄 수 있는 이런 장르는 최대한 허구와 주관을 배제하고 사건 그 자체만을 건조하게 풀이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 영화 자체는 역사적 사건의 한 가지 해석을 흥미롭게 풀이하고 있으니, 사전 지식을 가지고 영화를 본다면 문제없이 더욱 재미있게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 연출 면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마지막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박정희 대통령 살해 후 김재규가 걸어가는 뒷모습 장면에서 영화가 끝나지 않고 여기서 좀 더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아마 김재규가 대통령 살해 후 행선지를 어디로 선택했느냐에 따라서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뒤에 장면을 추가한 것 같지만, 연출적으로는 사족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마지막에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만큼, 김재규의 뒷모습을 쭉 지켜보면서 페이드아웃하는 신을 마지막 장면으로 하고 차를 돌리는 장면은 내레이션과 함께 틀어주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여담으로, 영화의 소재가 소재다 보니 관람객 연령대가 다른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서인지 영화를 보던 도중 지방방송이 참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모두가 아는 역사를 자기들만 아는 줄 알고 옆 사람에게 해설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서 영화에 집중하는 것이 참 힘들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