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6. 10:48ㆍ후기&리뷰&소개/영화
줄거리
주인공 '이구치 세이베이(井口清兵衛)'는 결핵으로 부인을 여의고 두 딸을 돌봄과 동시에 치매를 앓는 노모를 모시며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하급 무사이다.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동료들의 식사 권유도 마다한 채 언제나 일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는 이구치 세이베이를 동료들은 '황혼의 세이베이(たそがれ清兵衛)'라고 놀리지만, 너무 바빠서 옷도 빨아 입을 시간도 없는 세이베이는 그런 놀림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렇게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세이베이는 소꿉친구 '이이누마'에게서 이이누마의 여동생 '토모에'가 남편의 학대로 인해 친정에 돌아와 있다는 것을 듣게 되고, 우연히 토모에를 찾아온 전 남편의 횡포를 막다가 그와 결투를 하게 된다.
에도 막부 말기는 진검 승부가 금지되어 있었기에 세이베이는 목검만으로 결투에 나서는데, 사실 유명한 검술가 아래서 사사해 검술 실력이 뛰어났던 세이베이는 진검을 든 상대를 목검만으로 제압한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가고, 세이베이의 동료들은 그가 이름 그대로 진짜 '황혼의 사무라이'였다며 더 이상 그를 업신여기지 않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세이베이와 토모에의 관계는 가까워지고 토모에의 오빠 역시 그런 두 사람 사이를 응원해 주지만, 변변치 않은 집안 사정에 두 딸과 노모까지 딸린 세이베이는 토모에에게 폐가 될까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세이베이가 속한 번의 후계자 다툼이 끝나고 반대파의 가신들은 자결을 명령받으나, 반대파 중 한 명인 뛰어난 실력의 칼잡이 '요고'가 할복하기를 거부하자 그를 처리하기 위한 처형자로 세이베이가 지목을 받는데...
'황혼의 사무라이(たそがれ清兵衛)'는 2002년 개봉된 '사나다 히로유키(真田広之)' 주연의 일본 영화입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메이지 유신이 도래하기 얼마 전 시기인 에도 막부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사무라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연상하는 모습과는 다른 형태의 사무라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집권 이후 시작된 에도 시대부터 사무라이는 전과 같이 통치 계급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는 있었으나, 전쟁이 사라지고 공무원화된 사무라이들은 일평생 제대로 칼 한 번 뽑아 본 적 없는 자도 흔할 정도로 예전의 사무라이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진 상태였습니다.
또한 쿠로후네 사건 이후 서양 문화가 전파되며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사무라이의 위상은 더욱 떨어졌는데,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사나다 히로유키가 연기한 주인공 '이구치 세이베이'는 사무라이라는 위치에도 불구하고 직접 농사를 짓고 부업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하급 관리로서의 사무라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구치 세이베이는 가난 때문에 기존 사무라이라면 거들떠보지 않을 일도 마다하지 않고 사무라이라는 증거의 일본도도 팔아버릴 정도로 힘든 상황임에도 자기 단련을 소홀히 하지 않고 옳은 행동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등 주변 사람들 중 유일하게 '무사도'를 가지고 있는 진짜 사무라이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그런 이구치 세이베이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혼란스러운 사회와 주변 사람들의 험담에 휩쓸리지 않고 무사도를 기반으로 자신의 마음을 똑바로 세우고 인간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진정한 사무라이의 모습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연 사나다 히로유키는 이 캐릭터를 통해 절정의 연기력을 선보이며 영화의 완성도를 한껏 더 끌어올렸고, 2003년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 받으며 그 연기력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영화 자체는 어두운 색감이라든가 정적인 구성 등을 사용하는 전형적인 일본의 시대극 형식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화려한 볼거리보다는 인물들의 연기와 고증이 잘 된 시대적 모습에 중점을 두고 영화를 보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현재 '무사도'라고 전해오는 개념은 사실 메이지 유신 이후 군국주의화된 일본에서 미화된 개념이며 그전의 무사도는 지금 전해지는 형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는 점을 알고 있는 관객 입장에서는 무사도라는 개념이 정착하기도 전에 이상적인 무사도를 보여주는 세이베이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나마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으므로 이상적인 형태의 주인공의 모습 정도는 영화적 허용으로 보고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담으로 저는 이 영화를 올레 tv에서 무료 영화로 뜬 것을 보고 아주 옛날 영화인 줄 알고 봤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의외로 2002년 개봉한 영화라는 점에 놀랐습니다.
색감도 그렇고 영화 구성 측면에서 완전히 옛날 영화인 줄로만 알았는데, 반지의 제왕 1편과 같은 해에 개봉된 영화였다니... 뭐, 일본 사극은 대체로 활력이 부족하다는 장르적 특징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런 고루한 형태의 영화가 2002년 당시 영화 시상식들을 휩쓸었다는 건 일본 영화계가 너무 시대에 뒤처진 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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