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잃은 완산정

2019. 9. 22. 00:12음식/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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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입구에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완산정이라는 콩나물해장국집이 있다. 40년 전통을 가진 이 국밥집은 전주의 특산음식인 콩나물국밥을 서울에서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처음 먹으면 심심한 맛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음식을 먹고 싶은 경우에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곳이다.

필자의 경우, 완산정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찾던 음식점으로, 특히 새해가 되면 해돋이를 보고 이곳에서 밥을 먹는 등 꽤 오랜 추억이 서려 있는 집이다. 개인적으로 콩나물국밥의 자극이 약해서 그런지 어릴 때는 그냥 평범한 맛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추억이 쌓여서 그런지 다시 방문할 때마다 점점 맛이 각별해지는 것 같다.

요전번에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완산정에 들렸다. 그때가 8월 31일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 와서 글을 쓰는 이유는 좀 충격적인 일을 겪어서이다. 일반적인 저녁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인지 항상 붐비던 완산정의 모습과는 다르게 한산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사를 하며 들어서서 신발을 벗고 마루 위에 앉으려고 했다.(완산정에는 신발을 벗고 앉을 수 있는 마루 구역과 신발을 신은 상태로 앉는 테이블 구역이 나뉘어 있다.) 이때 서빙하는 아주머니가 (신발을 신고 앉을 수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참고로 필자는 완산정에 방문해서 한 번도 의자에 앉은 적이 없다.) 사람도 없는 한산한 상태였기에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라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주머니가 마루 위에 앉으면 서빙하기 귀찮다고 답을 하는 것이었다. 이때까지는 우리 가족은 그것이 그냥 농담인 줄 알고 웃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진지했다. 한 번도 완산정에서 이런 대답을 들은 적이 없는 우리 가족은 당황했다. 이 때문에 조금 말씨름을 하고 마루 위에 앉았다.

사실 여기까지도 아직 아주머니가 기분이 언짢은 일이 있는가 보다 하는 정도의 기분이었다. 주문을 하려는데, 메뉴에 콩국수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완산정에서 콩국수를 파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호기심에 주문을 해 봤다. 그리고 엄청난 대답을 들었다. 여름도 지났는데 뭣 때문에 콩국수를 주문하냐고, 안 판다고 그러는 것이었다. 벽에 떡하니 걸린 메뉴를 주문하고 계절 감각도 모른다는 핀잔을 듣고 있자니 손님 입장에서 어이가 없었다.

억지로 웃으면서 주문을 마치고 나니 눈에 띄는 것들이 몇 가지 보였다. 먼저 아주머니가 연변 사투리를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싼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고용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완산정만의 특별한 반찬인 취나물이 흐물흐물하니 맛이 죽은 것이 느껴졌다. 마치 만들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 맛이었다. 또한 시간이 흘러 밥시간이 되어도 가게가 별로 붐비지 않았다. 필자는 밥시간에 완산정이 사람들로 가득 차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요즘 음식점들을 방문하면, 한국인들이 아니라 조선족 점원들을 고용하는 음식점들이 늘어나고 있다. 필자는 이것을 잘못된 트렌드라고 생각한다. 조선족은 한국인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한국인과 너무 다른 문화와 정서를 가진 민족이다. 그 때문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겠지만) 조선족은 한국인과의 사이에서 쉽게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식당 주인들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싼 노동력을 구하지만, 그로 인해서 옛 단골들이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듯하다.

필자는 맛이 있어도 서비스가 별로인 음식점을 다시는 방문하지 않는 성격이다. 손님을 왕처럼 모시는 것을 바라지는 않아도, 비즈니스적으로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음식점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의 대접도 안 하는 음식점에서는 좋은 음식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자가 이 이후로 완산정에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는 완산정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기에 마지막으로 인목대비의 비법이 담긴 모주를 마셨는데, 참 달고 맛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먹은 콩나물국밥은 그동안 먹어 온 완산정의 콩나물국밥 중 가장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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