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회의 장기지속성에 대한 연구 정리

2019. 8. 16. 22:04지식&정보&저장

반응형

2019.2.11 글


1. 진관타오(金觀濤)의 초안정구조론

진관타오는 중국의 사회구조를 초안정구조론으로 분석했다. 그는 진한제국 성립 이후 중국의 사회구조는 기본적으로 거의 변화하지 않았으며, 국가를 흔드는 대반란과 왕조의 교체가 200~300년을 주기로 일어난 사실에 주목했다. 이 사실에서 그는 중국의 봉건사회를 ‘초안정적 시스템‘(Ultra-stable system), 즉 주기적인 붕괴를 통해서 자체의 안정을 유지하는 시스템으로 보았으며 그 하위 시스템으로 정치, 경제, 문화·이데올로기를 설정하여 상호 간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진관타오는 중국에는 분산적인 소농경제를 묶어주는 내재적인 조직력, 즉 동일한 이데올로기를 가진 유생계층으로 구성된 중앙집권적 성격의 관료조직이 존재했음을 지적했다. 그는 각각의 하위 시스템을 강력하게 결합시킬 수 있는 원동력을 유생을 매개로 한 이데올로기와 관료기구의 ‘일체화’에서 찾은 것이다. 이로 인해 소농경제 사회에서 등장하는 일부의 귀족화 경향과 농민의 지주에 대한 신분적 종속화가 강제되어 강력한 중앙집권적 전제정치가 유지될 수 있었다. 또한 국가와 개인 사이에 존재한 종법적 가족 형태는 유생과 유가사상을 매개로 한 국가조직과 동형구조체로, 이 종법동형구조도 강력하게 ‘일체화’를 보강해주는 기능을 하였다.

하지만 안정된 사회구조도 사회의 발전과 변화에 따라 조직교란력(그 내부의 하위시스템이 일정한 한계를 벗어나는 이탈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조직교란력의 예로는 경제시스템에서의 자작농의 지나친 감소, 상품경제의 발달, 이데올로기시스템에서의 비(非)유가사상의 발달, 정치시스템에서의 관료기구의 팽창과 부패 등이 있다.

진관타오는 기존의 견해와는 달리 이러한 조직교란력을 없앤 원인을 농민반란으로 파악했는데, 즉 조직교란력의 증가가 농민반란을 유발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조직교란력이 소멸되어 하나의 안정적인 구조에서 새로운 구조로 이행하지 못하고 초안정적인 구조가 유지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자면, 농민대반란에 의해 구왕조가 멸망하면서 관료지주, 토호, 왕족종실 등이 타도된다. 그와 동시에 기존 권력세력이 침탈·겸병한 대토지소유를 둘러싼 문제 및 팽창, 부패한 관료조직 문제가 해소된다. 그리고 국가과 동형구조체인 가정이 마치 세포와 같이 보존하고 있는 국가조직 구조의 복제된 정보를 통해서 반란 이전의 시스템으로 복귀할 토대를 마련하고, 다수의 유생들에 의해 유교의 국가이념으로 관료기구를 재조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왜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발생하지 않았는가?’의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진관타오는 중국은 각 왕조마다 새로운 경제요소(도시, 상업, 비농업인구의 발전 등)를 지니고 있었지만 이 자본주의의 씨앗은 고립적으로 성장할 뿐, ‘일체화’의 구조 때문에 이러한 발전 가능성의 요소들이 결합·상호촉진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진관타오는 이러한 입론을 통해 중국 봉건사회의 초안정적 구조를 극복하는 길로 내부의 시스템이나 요소가 아니라 외부의 충격이나 외래문명의 전래에 주목한다.

이런 진관타오의 입론 속에서 정치적 복선이 드러난다. ‘초안정적 구조’를 타파하지 않고 중국의 근대화가 어렵다는 결론은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에 내재한 봉건적인 요소들의 농후함을 지적하고, 서구 문명의 충격만이 몇천 년 동안 중국에 지속된 낙후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조반니 아리기의 동아시아 장기지속론

조반니 아리기는 동아시아의 장기지속에 대해 500년, 150년, 50년이라는 세 가지 시간대의 중첩으로 설명한다. 아리기는 ‘장기 20세기’에서 유럽에서 역사적 자본주의가 출현한 맥락을 주로 국가들 사이의 경쟁 및 체계적 축적순환에서 찾는데 이와 똑같은 논리를 동아시아에도 적용한다. 주로 중국과 일본의 경쟁이 동아시아의 구조를 변화시켜 온 장기지속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다만 그는 동아시아 분석에서는 자본주의를 낳은 체계적 축적순환의 논리가 아니라 유통적 질서에 초점을 맞춰 논리를 전개한다.

16~18세기에 걸쳐 동아시아는 조공 네트워크와 해상 네트워크로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세계지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는 분리된 국가들로 따로 떨어져 있던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조공 국가들의 위계적 서열을 띠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해상 네트워크와 조공 네트워크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해상 네트워크는 일본과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다양한 무역선과 화교들의 화상 네트워크라는 두 가지에 의해 교차되어 있던 네트워크였으며, 조공 네트워크는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조공을 매개로 주요 물자들의 교역이 이뤄지던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는 이 교역의 과정에서 독특한 상업망을 발전시키고 있었으며 그 정치적 질서의 중심은 16세기의 중국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으며, 일본은 중국 중심의 질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19~20세기는 동아시아 지역 내부의 공고성이 떨어지면서 다른 지역, 즉 서양과 상호작용하는 탈지역화의 시기이다. 유럽 경제가 동아시아로 팽창하게 되어 동아시아의 변화가 자체 내적인 논리보다는 유럽 경제(자본주의·제국주의)에 의한 원심력(분열로 이끄는 힘)에 의해 작동하여 동아시아의 내적 구조가 해체되는 시기이다. 중국은 이 시기에 아편전쟁을 겪고 청제국의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하여 조공 네트워크가 붕괴되기 시작했으며,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하여 공업화·근대화의 길로 접어들어 일본이 지역의 헤게모니를 차지하게 된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반대로 재지역화가 진행되면서 통합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일종의 지역 헤게모니 형태로 중국과 일본을 축으로 잇는 새로운 모델이 나타났다. 여기서는 기존에 형성됐던 네트워크 구조가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냉전 시기 일본을 중심으로 한국, 대만, 싱가폴 등 동아시아 신흥 경제국을 잇는 다층적 하청체계가 등장하고 동아시아 발전 모델이 등장한다, 다층적 하청체계는 일본을 정점으로 일본기술에 의존하는 피라미드형의 국가적 하청망을 의미하는데, 이는 1980년대부터는 중국의 개혁 개방과 더불어 이 하청체계가 중국 및 동남아시아로 확장되고 빠르게 자본 축적의 중심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화교자본의 급성장이 이뤄지게 되는데 이로 인해 동아시아 지역의 헤게모니가 일본 중심에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3. 간양(甘陽)의 유가사회주의 공화국론

사회주의 중국의 60년은 개혁개방 노선으로 전환한 1978년을 기준으로 앞의 30년과 뒤의 30년으로 갈린다. 중국 지식인들이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로 이 1978년을 기준으로 갈린다. 각각의 지식인마다 그 입장은 복잡하지만, 다소 거칠게 정리하면 1978년 앞의 시기를 긍정하고 뒤의 시기를 부정하는 구좌파(마오주의자)와 그 반대의 신좌파(개혁파)로 나눌 수 있다.

대표적인 신좌파인 왕후이는 사회주의 중국을 평가하면서 ‘반근대성적 근대성론’을 이야기한다. 이는 마오 시기의 근대화의 방식과 개혁 이후의 근대화 방식을 근대화라는 커다란 틀에서는 ‘연속’으로 보지만, 반근대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단절’로 보면서 중국이 역설적인 역사의 흐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80년대에는 진관타오와, 90년대 후반에는 왕후이와 입론을 같이하던 간양은 최근에 유가사회주의 공화국론이라는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중화인민공화국의 60년사를 파악할 때 78년을 경계로 그 전후의 30년을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보며 단절시키는 태도를 비판하면서 중국 역사의 세 가지 전통을 종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세 가지 전통이란 개혁개방의 전통(시장 및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강조), 마오 시기의 전통(평등과 정의를 강조), 유가사상의 전통(인정과 가족관계를 강조)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덩샤오핑의 전통, 마오쩌둥의 전통, 공자의 전통이라고도 한다.

특히 후진타오의 조화사회론은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서구의 개념과는 달리 중국 유가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공동부유라는 그 목표는 마오 시기의 목표와 같고,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점진적으로 개혁개방을 통해 공동부유라는 목표를 완성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즉, 후진타오의 조화사회론에 입각한 중국은 유가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길로 가고 있으며 이것이 새로운 개혁 컨센서스임을 주장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