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고찰] 정액제 모델이 도태되는 이유에 대한 고찰

2020. 4. 19. 13:19게임/고찰

반응형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게이머들은 가장 먼저 그 게임에 드는 비용에 대한 생각부터 할 겁니다. 플레이에 비용이 드는 게임인가? 유료라면 가격은 얼마인가? 게임의 가치가 그 가격에 걸맞는가? 패키지 가격 시스템인가 정액제 시스템인가? 등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평가하고 게임을 시작할지를 결정하겠죠.

이 점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액제 모델은 왜 도태되는 것일까? 가격이 문제인 것일까? 어떤 방식으로 결제를 하든지 상관없이, 어차피 그 게임 수준에 맞는 가격이라고 생각된다면 게이머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결제를 하지 않을까?


정액제 모델을 주 결제 시스템으로 유지하는 게임은 (제가 알기로는) 전적으로 온라인 MMORPG 장르인데, 이 장르 자체가 사양세에 접어든 장르이기 때문에 정액제 모델 역시 그와 같이 발을 맞춰 사라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부분유료화의 시대가 왔고 콘솔 게임은 도태될 것이다'라는 10년 정도 전까지 게임계에서 지배적이던 생각과는 다르게, 현재 게임계의 대세 장르는 콘솔 게임입니다. 매출 순위 측면에서는 일부 부분유료화 모바일게임들이 더 앞설 수도 있으나,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게임성과 인기를 가진 게임들이 성공하는 많은 경우를 보면 그러하죠.

그런 콘솔 게임은 분명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구매해야 하는 패키지 혹은 게임 기기 구매 등으로 인한 초기 비용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인기 있는 게임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열성적으로 구매하려는 모습이 나타날 정도로 많은 콘솔 게임들이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이런 세태를 보면, 가격 그 자체는 게임이 가격에 충분한 퀄리티를 보장한다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게임의 가격은 얼마이든지 상관없다는 것을 봤습니다. 사람들은 게임이 무료든지 유료든지, 싸든지 비싸든지에 상관없이 그 게임이 맘에 든다면 망설이지 않고 플레이하고자 할 것입니다.

혹자는 말할 것입니다. 정액제 모델은 가격 지불 형태가 일회성이 아니라 매달 일정 가격을 지출해야 한다는 시스템 구조 그 자체의 문제 때문에 전체 가격과는 상관없이 소비자에게 심리적 부담을 부담을 지워서 가격이 비싸지 않아도 진입장벽이 크다고 말이죠.

사실 이 문제는 내가 과연 게임을 하나 구매해서 얼마나 플레이할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정말 하드하게 게임을 파는 사람들은 100시간, 1000시간, 심지어 10000시간 넘어서도 그 게임만 주구장창 플레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죠.

예를 들어, 젤다 야숨의 게이머 평균 전체 플탐은 100시간이 되지 않습니다.(https://howlongtobeat.com/game?id=38019) 그리고 희망소비자가격은 74800원입니다.(https://www.nintendo.co.kr/software/switch/aaaaa/products.html)

그리고 현세대의 대표적인 정액제 온라인 게임인 와우와 파판14의 한 달 정액제 가격은 19800원입니다. 젤다 야숨을 구매하는 대신에 와우나 파판14를 한다면 세 달 반하고도 조금 더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죠.

짧게 잡아 세 달 반이라고 생각해 봐도, 보통 젤다 야숨을 구매해서 세 달 반 동안 플레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길게 잡아 두 달 정도 안에 플레이를 끝마치겠죠.(업적게이 제외)

정액제 게임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그 경우에도 야숨과 마찬가지로 한두 달 동안만 게임에 푹 빠져서 죽어라 플레이하고 그 이후에는 잘 플레이를 하지 않지 않을까요?

결론은 지불 능력이 충분하고 조금이라도 수리적 능력이 있는 성인 입장에서는 정액제 시스템의 매달 지불하는 가격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애초에 정액제 모델은 매달 자동으로 결제가 되는 구조가 아니라, 그때그때 게이머가 직접 결제를 해야 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심리적 장벽을 형성할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구글 스태디아와 같은 구독형 게임 서비스가 차세대 게임 서비스로 각광받는 것을 보면 정액제보다 심리적 장벽이 더 클 것 같은 '지속적으로 돈을 지불하는 방식'은 미래에도 수익성이 있는 BM으로 인정받았습니다.(구글 스태디아 자체가 유용한지는 다른 문제)


누군가는 정액제 시스템으로는 내가 그 게임을 영구적으로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싫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사람들이 정액제 모델에 느끼는 진입장벽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요소로 보입니다. 사람의 소유욕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돈이 충분한 사람에게 월세를 살 건지, 아예 집을 구매할 건지 물어본다면, 나오는 답은 뻔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점 때문에 정액제가 도태되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비싸지 않은 가치의 재화는 얼마든지 버릴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경험 자체를 중요시 여기죠. 물건을 버리기 어려운 것은 그 물건에 담긴 추억과 경험 등이 있어서이지, 별로 추억이 없는 물건의 가격이 별로 비싸지 않다면 그냥 대청소할 때 대충 버릴 수도 있습니다.(TV처럼 비싼 물건이라도 바꿀 때가 되면 가차 없이 버릴 수 있음)

그런 측면에서 게임을 소유할 수 없는 것이 어느 정도 진입장벽을 형성하기는 하지만 정액제를 사용하지 않는 본질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봤지만, 소비자 측면에서 정액제 모델이 도태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위에서 정액제가 사업적 측면에서 좋은 방식이라고 짧게 언급했었습니다.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정기적으로 개발자들에게 돈이 돌아가기 때문에 당장의 돈에 급급할 필요가 없고 여유 있게 게임 개발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업가들은 부분유료화라는 더 좋은 BM을 개발해 냈습니다. 부분유료화 모델은 일단은 무료라는 방식으로 진입장벽을 없애 플레이어들을 끌어당기며, 장기 수익적 측면에서는 정액제보다 훨씬 많은 이득을 이끌어 냅니다.

그렇습니다. 정액제 모델이 사라지는 이유는 게임 회사들이 이 BM이 안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엔씨소프트가 리니지나 아이온, 블소를 유료화에서 무료화로 전환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엔씨소프트가 어떤 이미지의 회사인지는 한국 게이머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요, 그곳에서 게이머들을 위해 자사 게임들을 무료화로 전환했을 리가 없겠죠. 다 돈이 되니까 시행하는 것입니다.


정액제 모델은 분명 비싼 모델이 아닙니다. 부분유료 모바일게임들과 비교하면 분명히 싸고, 최근까지 계속 이슈가 된 '패키지 게임 DLC마다 추가 결제하기' 같은 걸 생각해도 훨씬 합리적인 가격을 보이고 있죠. 오히려 패키지 게임 시장에서 DLC마다 추가 가격을 메기는 이유가 게임 시장 전반적으로 게임 가격이 오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취하는 정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보다 싼 가격의 정액제는 정말 게임 회사 입장에서는 캐시카우라고 보기보다는 밑빠진 독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표적인 MMORPG인 와우는 서비스 초기에 한 달 정액제 가격이 24750원이었다가 10년도 더 지난 지금은 정액제 가격이 19800원이 되었고, 와우 다음 세대에서 가장 성공한 파판14 역시 정액제 가격이 19800원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정액제 가격은 정말 비싸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저 입장에서 봐서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정액제 방식을 사용하는 게임은 지속적으로 관리가 필요하며 일정 주기로 업데이트가 지속되어야 정액제를 정당화할 수 있는데, 그런 게임은 온라인 MMORPG 장르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MMORPG는 그 하드코어함 때문에 일부 매니아들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게이머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장르입니다. 게임성이 아무리 좋은가는 상관없이 게임 구조 자체가 이미 진입장벽이 되는 장르라서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거죠.

게임 장르적 한계 외에도, 생각해보면 애초에 게임이라는 취미를 무료 온라인게임으로 시작한 현 세대의 게이머들에게는 게임에 일정량의 돈을 계속 지불하라는 것이 무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던 것에서 요즘은 조금씩이라도 게임에 돈을 쓰는 것에 사람들의 거부감이 없어지고 있는데, 나중에 주류 게이머 세대가 교체되는 시기가 온다면 다시 정액제 모델의 게임이 활성화될지도 모를 일이죠.

결론은 지금 당장 정액제 모델이 도태되고 있는 이유는 게임 회사 입장에서나 게이머 입장에서나 구미가 당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내릴 수 있겠네요.


주저리주저리하다가 말이 너무 길어진 것 같습니다. 원래 쓰려고 했던 글과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좀 많이 흐른 것도 같고요. 그냥 정액제 모델을 사용하는 게임을 하는 입장에서 왜 정액제 모델의 게임이 점점 줄어들까를 생각하다가 여기까지 생각이 흐른 것 같습니다. 너무 글이 중구난방이라도 이해해 주세요.

반응형